시리즈로 돌아가기
3화: 20210821 EP03. 틈
* 쉿, … 그리 큰 소릴 내면 들킬 텐데. 삐걱, 하고 마룻바닥을 밟는 소리가 났다. 문이 닫혔다. I 전투 후, 엉망이 된 채로 숨만 고른 후에 나와 하루히가 다시 돌아온 호즈노미야는 여전했다. 저택은 언제나처럼 조용했고, 여전히 발목을 끈끈하게 잡아붙드는 듯한 갑갑함이 있었으며, 심장 소리에 맞춰 흘러가며 마음을 소란스럽게 하는 수많은 시계소리들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무사한 우리를 보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떨리는 손길로 뺨을 쓸어주셨고, 살면서 그런 대우는 처음 받아보는 것 같은 무척이나 생소한 기분에 휩싸여 시선을 가볍게 굴렸다. 결국 하루히를 지키는 것을 실패했는데. 부모님의 얼굴을 곧게 바라보기에는 복잡한 심경이었다. 언뜻 시야에 들어온 하루히의 손은 희게 주먹을 쥐고 있었다. 언제나와 같은 무표정으로, 순한 얼굴이었는데도 어쩐지 전부 지루하고, 무엇 하나 중요한 것 없단 듯이. 새하얗게 질린 주먹을 쥔 손을 보자마자 어쩐지, 기분이 아주, 이상했다. II 피곤하니 쉬고싶단 말은 하루히가 먼저 꺼냈다. 부모님에게서 네 번째로 수고 많았다는 말을 듣고 있었을 때였던 것 같다. 부모님은 지금까지 으레 그러했듯이 하루히의 말에 고갤 끄덕이며 우릴 방으로 들여보냈다. 방은 당연하게도, 언제나처럼 그 자리에 있었다. 짙은 고동색 목재, 녹색 다다미, 복도에 있는 커다란 괘종시계에서 들리는 둔탁한 초침소리가, 1년에 가까운 시간을 두고 돌아왔는데도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하루히는 제 방 앞에 서서는 들어설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여전히 흰 손, 무표정한 낯으로. 난 그 옆, 내 방에 서서 문고리를 잡고 있었다. 내가 먼저 들어갈 때까지 그 애가 먼저 들어갈 것 같지 않았다. 나란히 옆에 서 있는 그 짧은 시간동안, 그 애와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결국 실패했지만, 살았다. 그 애도 그랬다. 그냥, 그런 것만 생각해도 숨이 턱 막혔다. 결국 내가 먼저 방 안으로 들어갔다. 건너편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난 것은 조금 후였다. 정적이었다. 방 바깥에서, 혹은 안에서 울리는 시계 초침 소리가 전부였다. 그리고 나는 그 정적에 긴장하고 있었다. 바닥을 느릿느릿 걸어서 힘이 빠져 주저앉았을 때에도, 쓰러지듯이 다다미 바닥에 누워있었을 때에도, 몸은 너무도 고단했을지언정 정신은 말짱했다. 너무도 고요했다. 너무 소란스러웠고. III 내가 결국 쉬는 것을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마음이 혼란스러워 잠에 들려다가도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그 몽롱한 정신의 끝에는, 무심한 낯의 하루히가 있었다. 그냥, 그러고 있기에는 마음에 걸렸다. 그 애가 쉬고 있는 걸 보아야 제대로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호즈노미야 저택은 숨죽인 듯 조용해서, 비가 오거나, 저택 바깥에 사람들이 지나가지 않는 한 목소리를 죽이지 않으면 가까운 방의 말 소리가 곧잘 들리곤 했다. 선명하게 들리는 시계소리 너머, 명확하진 않은 목소리들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들려, 목재로 지어진 집들이란 대부분 이렇다는 점을 새삼스레 떠올려냈다. 아마 지금 방 문을 미는 이 소리 역시 다른 이들에게 다 들릴 거란 생각 역시도. 괜히 평소보다도 조용히 걸었다. 어쩐지 남의 방에 몰래 들어가는, 나쁜 짓을 저지르는 것 같은 기분이 가슴께를 꾹 조여왔다. 하루히의 문 너머에는 앉아있는 실루엣 하나가 보였다. 피곤할 터인데도 아직 잠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 역시 채 갈아입지 않은 교복차림으로. 하루히, 하고 부르지도 않았는데도 실루엣은 느릿하게 일어났다. 숨을 작게 들이마셨다. 애매하게 긴장한 탓이었다. 샘에서는 잔뜩 날을 세우고 애원했고, 데스이터가 패배한 다음에는 어느 쪽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로 집으로 돌아왔으니까. 얼굴만 보고 바로 나오면 돼. 곧 사라질 습관일테니. 그리 생각하고 문을 열었을 때에는, 눈 앞에 하루히가 있었다. 진한 연두색의 눈동자가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심장이 내려앉는 낯설지 않으면서도 익숙해질 수 없는 기분이 들어, 잘못 들어왔어, 미안, 하는 구차하고 우습지도 않은 변명 따위를 내뱉었지만 곧바로 삼켜져버렸다. 채 닫히지도, 완전히 열리지도 못한 문을 사이로 고개가 급하게 끌어당겨졌다. 자비라곤 없는 키스였다. 무심코 벌린 입술 사이로 적나라하게 숨소리가 흘렀다. 눈을 감았다. 뜰 수 없었다. 떠선 안 될 것 같았다. 입술은 맞물린 채 내게로 파고들고 있었고, 양 뺨을 잡던 손은 자연스레 허리를 감싸 안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 애 치고는 제법 거친 손길이었다. 내 허리를 꽉 쥔 손이 아파 흠칫 정신이 들었다. 맙소사,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키스라기에는 어쩐지 화풀이같았다. 화풀이라기에는 폭력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몸에 힘이 빠졌다. 우리는 이러면 안되었다. 날 끌어안은 팔을 두어 번 밀어내고, 하루히의 이름을 부르려 했지만, 두 음절만에 다시 입술이 막혔다. 급히 짓눌리듯 얽혀오는 것에 급히 내뱉는 것은, 숨소리보다는 앓는 소리에 가까웠다. 이내 잡아 끌려, 품에 안긴 채로 방 안으로 비틀거리며 빨려들어갔다. 뒷걸음질치며 마룻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 순간마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소리가 들릴지도 몰랐다. 누군가가 소릴 들을지도 몰라. 급히 고갤 들면 하루히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한 연두색 눈동자가 형형했다. 하루히, 너, 지금 무슨 짓을 한 줄… 쉿, … 그리 큰 소릴 내면 들킬 텐데. 삐걱, 하고 마룻바닥을 밟는 소리가 났다. 문이 닫혔다. IV 하루히가 화가 났음을 후유키는 직감했다. 하지만 화가 났다는 것 때문에 그가 하고싶은 변덕대로 끌려다니기에는, 그들은 남매였고, 이곳은 호즈노미야 본가였다. 복도를 조금만 걸으면 도란도란 대화하고 있을 부모님이 존재하는. 혈육과 혀를 얽는 것이 어디 용납이 되는 죄였던가. 넘어가서는 안되었고, 기분이 나빠야 정상이었다. 이것은 옳지 않았다. 정말로, 옳지 않았다. 제 볼이 단단하게 붙잡혀 있었다. 파고들어오는 것에 정신없이 혀를 얽으면서도 후유키는 일말의 이성으로 저를 끌어안은 팔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볍게 밀어냈다. 힘을 강하게 주어 떨어뜨릴 수도 있었지만, 후유키 본인이 하루히에게 그리하지 못할 것을 모르는 이는 둘 중 아무도 없었다. 하루히가 가볍게 밀자, 그리 단단하지도 않은 방문으로 후유키가 떠밀렸다. 등이 장지문과 부딪치는 소리가 참으로 얄팍했다. 맞물린 입술 사이로 울듯이 제발, 하고 속삭이자 그제야 하루히는 잠시 멈칫하고는 느릿하게 입술을 떼어냈다. 후유키는 생각을 채 이어나갈 수 없었다. 머릿속은 이 상황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손등으로 제 입술을 가린 채 고갤 돌리고 숨을 색색거리며 몰아쉬고 있으려니, 비슷하게 짧은 숨을 밭으며 호흡을 고르던 하루히가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짜증이 그득 담긴 시선으로 싸늘하게 자신을 가만히 내려다보는 모습이 낯설었다. 후유키는 흠칫 몸을 물리려했고, 하루히는 놓아주지 않았다. 한 팔로는 허릴 감아 잡아당기고, 한 팔은 노골적으로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후유키가 급하게 휙 붙들었다. 아, 하는 소리를 나즈막하게 터뜨림과 동시에 후유키는 보이지도 않을 문 건너편을 보려 고갤 돌렸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 문으로 누군가가 다가와, 이 모습을 알아챌 것 같았다. 너희 지금, 하고 경악에 가득찬 음성이 떠올라 눈을 질끈 감았다. 하루히는 그런 모양새가 제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인지 고갤 숙여 다시 몇 번 짧게 후유키에게 입맞췄다. 셔츠 단추는 이미 반쯤 풀린 후였다. 제 어깨와 드러난 가슴께에 짧게 입술을 머금듯이 하고는, 맞물린 입술새로 새어나오듯이 나긋하게 누나, 부르는 목소리는 짐짓 다정을 꾀했으나 경고에 가까웠다. 후유키는, 그러니까, 울고 싶었다. 제게 파고드는 팔을 붙든 손에 힘이 조금 풀어졌다. 아직 갈아입지 않은 교복치마 아래의 스타킹을 내리며, 타인의 손이 닿지 않았을 곳에 닿는 손에 자비 따윈 없었다. 흑, 하고 숨을 들이켰는지 내뱉었는지 모를, 우는 소리가 가볍게 흘렀다. 하루히, 제발, 급히 뻗어 채 밀어내지 못한 손이 몇 번이고 휘적이며 하루히의 가슴께에서 미끄러졌다. 후유키가 기댄 문은 너무도, 너무도 약했다. 문이 넘어갈까 급하게 하루히의 조끼를 붙들며 기댔다. 그저 누군가가 이 모습을 볼 일 없기만을 바랐다. 그러다가도 반사적으로 붙든 조끼를 밀어내려 잡아당겼다. 안돼, 그만해, 하고 애원하듯 속삭이는 목소리에, 하루히는 작게 웃었다. 즐거워 보이지는 않았다고 후유키는 생각했지만, 그리 오래 가진 않았다. 다리 사이를 가볍게, 혹은 집요하게 문지르던 손가락이, 안으로 파고들었다. 하루히를 붙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힘 빼, 후유키. 다치니까. 몸을 숙여 후유키의 목덜미 가까이에 입을 맞추던 하루히가 느릿하게 속삭였다. 그 목소리에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 생각이 멈췄다. 너무도 생소했다. 후유키는 이 손을 떼어내고 싶었다. 하루히를 밀어내고 제 방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면 그저, 학교에서 있었던 수많은 ‘어떠한 분위기’처럼 지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 그럴 즈음에는 안의 손가락이 가볍게 제 안을 휘저었다. 소리를 내기 전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파? 묻는 목소리가 평소같아, 무심코 고갤 내젓다가 멈췄다. 그래? 그러면 손가락 하나가 더 들어왔다. 안을 누르는 듯이 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 무심코 문을 짚었다. 장지문에선 소리가 크게 났다. 우습지도 않다는 듯이 손을 움직여대는 것을 너무도, 참을 수 없었다. 소리를 삼키려 숨을 멈추고, 숨을 멈출 때 쯤에는 그 손도 멈춰버리는 것의 반복이었다. 부러 들키고 싶은 듯이. 그리하여 그를 곤란하게 하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굴었다. 하루히는 저를 만지고, 끌어안고 입을 맞추면서도 한사코 조용했고, 후유키는 제 흐느낌만이 간헐적으로 울리는 이 방을 견디기 힘들었다. 무서웠다. V 그만, 제발, 화내지 마, 하루히…. 그때까지 반쯤 참았던 숨을 탁 내뱉으며 참던 말이 새어나온 것은 그때였다. 언제부터 울음기가 새었는지, 후유키의 눈가가 붉었다. 하루히의 품에 안겨서는 반쯤 벗겨진 채로 애걸하는 모양새였다. 하루히를 붙들던 손으로 제 눈가를 닦아내자, 하루히는 그제야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는 슬 거뒀다. 제게서 나온 액이 찬 날씨 탓에 그새 식어서, 하루히의 손끝이 제 맨살에 살짝 스치는 것도 차가워 몸을 움찔거렸다. 이내 느릿하게 한숨을 내쉬며 하루히가 후유키를 끌어안고, 흐트러진 셔츠 탓에 드러난 목덜미에 진득하게 입술을 부볐다. 난 정말, … 널 보면 화가 나, 후유키. 나긋하면서도 여유롭던 평소와는 어조부터가 달랐다. 하루히는 목덜미에서 맴돌던 입술을 떼고 후유키의 고갤 돌려 자신의 눈을 바라보게 했다. 아까의 무심함과는 다른, 지친 낯이었다. 네겐 내가 필요없지. 내가 성가시잖아. 내가 죽길 바란 적도 있지 않아? …… 하루, 히. 그런데 왜 날 굳이 살리려 한 거야. 죽지도 못하게…. 아냐... 결국 버틸 수 없었다. 고이지도 않았던 눈물이 어느 순간 뚝뚝 떨어졌다. 그저 서러웠다. 대답도 나오지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 멈춘 것처럼 가만히 하루히에게 붙들린 채, 울음을 터뜨렸다. 하루히의 원망은 언제나 이렇게, 갑자기 제 가슴께를 찢어발기는 것마냥 쿡 꽂혔다. 고갤 몇 번이나 내저었지만 하루히는 언제나 그러했듯이, 그만둘 생각은 없어보였다. 이제 그만 죽고 싶어, 후유키.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어? 제발... 나 아파, 후유키. … 하루히는 그러면서도 손을 뻗어 후유키의 뺨을 감싸 눈물을 닦았다. 흐느끼는 낯이 아름다웠다. 바보같은 후유키. 바보같은, 바보같게도… …. 호흡을 하려 울음을 삼키는 중에서도 후유키에게서는 눈물의 눅눅한 내음이 났다. 후유키에게 키스하고 싶었다. 자연스레 끌어안고 입술을 겹쳤다. 후유키는, 눈을 감았다. 차오르던 눈물이 아래로 툭 떨어졌다. VI 처음이었다. 눈물 젖은 눈을 한 후유키는 이젠 저를 밀어내지 않았다. 이전처럼 키스하고 싶어 시선을 맞춰도 어색하게 고갤 돌리지도, 끌어안아도 저를 밀어내며 곤란하단 낯을 하지도 않았다. 그럴 여력도 없는지, 어떤지는 몰랐지만. 여전히 짜증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그래도 이젠 빌어먹을 방 바깥을 신경쓸 여유따위는 없을 테다. 하루히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무용한 시간 낭비는 이걸로 끝이었다. 눈물로 짭짤해진 볼에 몇 번쯤 키스하고, 숨이 차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혀를 얽고, 입술을 느릿하게 부딪치며, 하루히는 후유키의 허리를 안고 밀어붙였다. 몸을 밀착하며 가슴이 제게 가볍게 눌리는 것도 그다지 나쁜 일은 아니었다. 브래지어 아래로 손을 집어넣어 찬 손으로 한손에 꼭 맞게 들어오는 가슴을 가볍게 쓸고는, 말캉한 것을 콱 쥐면, 숨만 긴장한 듯 떨던 후유키가 그제사 아프단 듯이 흑, 하는 소릴 내는 것도. 입술을 몸 곳곳에 부비며, 얕은 숨소리를 내뱉다가도 부러 괴롭히듯이 매만지던 가슴을 잡아 가볍게 비틀면, 아, 하는 소리를 내며 몸을 물린 탓에 문이 눌려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어 굳어버리는 것도 제법 우스웠고. 손을 내려 아래를 만지려고 하면 이름을 부르며 제게 매달리듯 하다가도 몸을 긴장시키는 것도 나쁘진 않았으니까. 아까는 손가락 하나부터 들어갔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았다. 손가락 하나를 비좁은 곳에 밀어넣고, 소리를 참겠답시고 더 이상 입술을 깨물지 못하도록 후유키의 입가에 몇 번 입을 맞추었다. 이내 좀 더 다정하게 입술을 머금으면 오래 넓히지도 않았는데도 손가락이 하나 더 들어갔다. 제 입술 사이로 후유키의 신음이 울렸다. 평소 말하는 소리가 나즈막하고 차분한 것에 비해서는 조금 더 높았다. 후유키는 젖은 눈을 파르르 감고 있었다. 하루히는 어떻게 하면 저 눈을 뜰까, 하는 생각을 하며, 넣은 손가락을 벌려 안을 넓혔다.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은 모양인지 후유키가 제게 매달리듯 붙든 채로 고갤 몇 번 내저으며 물러나려 했다. 허리를 단단히 고쳐 안았다. 이러지 않으면 상처입힐 터였다. 상처입혀서라도 갖고싶은 것은 맞았지만 굳이 흠을 내는 건 바란 적 없었다. 이미 글렀을지언정 한번 더 인내해주며, 상냥하게 굴어야 했다. 미련한 제 혈육은 그렇게 대해야했다. 손가락을 타고 액이 흘렀다. 바닥에 툭 툭 떨어지는 소리가 둔했다. 후유키, 하고 부르면 혼란스러워하는 와중에서도 무심코 고갤 들어 눈을 맞추는 것이 좋았다. 금색눈이 눈물에, 조명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이러면서 제게서 벗어나겠다고 말했다고… 손가락을 뺄 듯이 손을 물렸다가, 쑤시듯 밀어넣었다. 그 반복이었다. 아흑, 으, 하며 고갤 처들었다가 다시 푹 꺾이는 것에 가라앉았던 기분이 조금은 나아지는 것 같았다. 후유키, 날… 책임져야지. 귓가에 입맞추듯 속삭이면 그에 대답하듯 후유키가 한숨 쉬듯 내는 소리가 물기에 젖어있었다. 그에 맞춰 후유키의 안이 제 손가락을 가볍게 꾹 조여왔다. 슬슬 저도 참기 힘든 참이었다. VII 이불로 데려갈까,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제 심술궂음이 어디 갈 일도 없었고, 애초에 들키고 들키지 않고가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후유키의 팔을 제 목에 둘러놓고서 허릴 붙잡은 채로 한쪽 다리를 편하게 들었다. 애액 탓에 허벅지와 내려간 스타킹이 벌써 번들거렸다. 그런 주제에 불안하게 절 바라보는 눈빛이 우스워서, 눈가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힘 빼. 입술 물지 말고. 작게 속삭이자 파르르 떨리는 숨이 길게 이어졌다. 제 것을 꺼내 느릿하게 둔덕에 가져다대고는 구멍에 부볐다. 긴장하는 것 같기에 느릿하게 입술을 겹쳤다. 금방 눈을 감고 입을 벌려 키스를 받아들이는 모습이 생소했다. 겁 먹은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느릿하게, 밀어넣었다. 생각한 것보다 더 뻐근하게 좁은 것이, 그새 긴장 탓에 자연스럽게 조여진 모양이었다. 조금씩 밀어넣을 때마다 괴로움일지 쾌락일지 모를 것에 젖은 흐느낌이 후유키에게서 새어나왔다. 버거울 정도로 조여오는 감각에 끄트머리에 걸칠 때까지 뺐다가, 느릿하게 다시 아까보다 더 밀어넣기를 반복하면, 후유키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도 크게 뜨고 숨을 잘게 헐떡이며 급하게 제 등에 손톱을 세워 긁었다. 웃옷을 제대로 벗지 않아 별 타격은 없었지만 평소라면 그러지 않을 애가 제게 상처를 내려 드는 건 또 우스운 일이다. 반쯤 넣어 어중간한 쾌감이 이어졌다. 인상을 슬 찌푸리며 후유키, 하고 부르면 후유키는 정신없이 고갤 또 내저었다. 누나. 안겨있던 몸이 굳었다. 내벽이 조여들었다. 이런 호칭에 약할 줄은 또. 정신없이 헐떡이면서도 결국 내 누나란 사실에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게 우습기도 하고, 바보같기도 하기에, 뻑뻑한 안을 깊게, 한번에 끝까지 파고들었다. 아. 나즈막한 비명이었다. 소리를 채 죽이지 못한 모양이었다. 후유키의 입이 달싹거렸다. 숨을 짧게 몇 번을 내리쉬었다. 허리가 곧추세워졌다. 채 마르지 않은 눈에서 눈물이 뚝 뚝 흘렀다. 한번 끝까지 들어간 것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제법 걸릴 것 같았다. 아픈 모양인지 언제나 단정하게, 소리없이 정갈하던 호흡이 엉망으로 흐트러져 고르지 않은 것도 제법 좋았다. 기다려주기에는 조금 더 화풀이를 하고 싶었다. 엉망이 되었음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완전히 밀어내지 않을 것이다. 그럴 수도 없을 것이고. 그걸 모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한번 더, 크게 밀어넣었다. 흐윽, 하는 소리가 제 귓가에서 터져나왔다. 하, 루히…. 후유키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고, 그때부터는 참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엉망이었다. 몇번이고 후유키의 목덜미를 물었고, 안이 꽉 조여낼 때마다 낮은 숨을 토해냈다. 이게 내가 가진 전부인 것처럼 망가뜨리고 싶었다. 몇 번이고 안을 헤집으며 퍽퍽 소리가 날 때까지 몰아쳤다. 후유키의 안에서 나오는 물이 바닥을 흥건히 적실 참이었다. 후유키는 처음에는 비명을, 이후에는 흐느낌을, 다음에는 울음섞인 신음을 이었다. 소리를 죽일 수 없을 것 같을 때 쯤 귓가에 대고 쉿, 하면 눈물에 잠겨 몽롱해진 낯으로 저를 바라보고는 입을 꾹 다물어보려 하다가, 결국 자신 안에 몰아치는 감각을 참을 수 없던 모양인지 내게 매달려 입술을 열었다. 제발, 그만,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후유키는 절대 제 곁을 떠나지 못할 주제에 언제나 감히 제 앞에서 끝을 말했다. 말하지 못하도록 더 잔뜩 괴롭혀야 했다. 귓가에 무어라 속삭일 즈음에는 후유키는 결국 견디지 못했다. 이를 악물고 눈을 질끈 감고, 손발을 꾹 오므리며 절정을 터뜨렸다. 안을 사정없이 조여오는 탓에 제 절정도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찾아왔다. 이곳저곳에 백탁액이 튀었다. 그리고 끝이었다. 지친 몸과 정신은 더 이상의 자극을 견디지 못했다. 하루히의 품에 무력하게 안겨 몸이 무너졌다. 까무룩 점멸하는 의식 속에서 옅은 발걸음소리와 말소리가 들렸다. 저를 끌어안고 앉은 하루히의 짧은 헛웃음 소리가 들렸다고, 후유키는 쓰러지는 중에도 생각했다. VIII 일어나면 하루히의 방, 이불 위였다. 분명 쓰러졌을 때에는 방문 앞이었을 터였는데. 셔츠 단추는 풀어진 그대로였지만 스타킹은 벗겨져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얼마나 울었던지, 목이 따끔거렸다. 몸이 아팠다. 이곳저곳 욱신거렸고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방은 조용했고, 여전히 시계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조금 거리를 두고 하루히가 앉아있었다.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든간에, 입이 막힌 것 같았다. 그 말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그냥 그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몇 번 바닥에 팔을 짚다 힘이 빠져 휘청였고, 그럴 때마다 하루히가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보았지만, 가야했다. 방문을 열고 나가는 나를 하루히는 붙잡지 않았다. 그저 나를 바라보고 한 마디 내뱉었을 뿐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당분간 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 말을 더 듣고싶지 않아 문을 닫고 내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나는 짐을 쌌다. 이 일그러진 관계를 붙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는 지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하루히가 나를 몇 번 불렀다. 후유키. 목소리가 느릿했다. 뒤를 돌아보면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 정도는 하고 있었기에 버텨냈다. 가야만 했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마당을 나설 때 쯤, 저택 안에서 괘종시계가 울렸다.